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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national Journal of Arrhythmia 2014;15(3): 24-30.
MAIN TOPIC REVIEWS
우리나라의 영구 심박동기
과거와 현재




서론

   영구 심박동기가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서맥성 부정맥 환자에게 도움을 주기 시작한 것은 서양에서도 1960년대에 들어서이며, 우리나라도 그리 늦지 않다. 초창기 우리나라의 영구 심박동기 시술은 기록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여러 증언에 의하면 1960년 스칸디나비아 의료원에서 한 외국 의사와 김종설이 최초로 시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순수한 우리 의료진에 의한 시술은 서정삼, 김삼수 등이 시술한 것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 이후 커다란 발전을 거듭해 2012년 총 3,484례의 영구 심박동기가 우리나라에서 시술되었고, 2013년에는 4,000례를 돌파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 확대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영구 심박동기 시술 건수는 서구는 물론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서도 설명이 어려울 정도로 매우 적은 편이다.

심장 전기 자극의 초기 연구

   이미 18세기 중반 유럽의 선배 의학자들은 인간을 포함한 생체에서 발생하는 전기 현상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의사인 Galvani는 해부용 칼로 죽은 개구리의 다리 신경을 건드리는 순간 다리 근육이 수축하며 구부러지는 것을 관찰하여 생명과 전기 현상과의 관련성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것이 결국 현재 전기생리학(electrophysiology)의 시초가 되었다.1 1899년 McWilliam은 British Medical Journal에 "Electrical Stimulation of the Heart"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는데 미주신경을 자극하여 조성한 무수축(asystole) 상태에서 심실을 전기적으로 자극하면 심실 수축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2 동시대의 Einthoven (1860-1927)은 엄청난 크기의 심전도 기계를 발명하였으며, 심전도를 통해 심장의 전기 현상을 직접적으로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1926년 호주의 Mark Lidwell은 교류 전류를 이용하여 바늘의 한쪽은 피부에 다른 한쪽은 심장에 넣어 심장을 자극하는 방법을 개발했고, 이를 이용하여 사산아의 심장을 10분간 자극하여 구조한 기록이 남아 있다.3 이를 최초의 임시 박동기로 인정하고 있다. 1932년에는 미국의 생리학자인 Albert Hyman이 수동으로 구동하는 전기 기계적 도구를 고안, 제작하여 처음 ‘인공 심박동기(artificial pacemaker)'란 이름을 붙였으며, 심장이 정지하면 우심방에 바늘 전극을 넣고 자극하면 심박동이 회복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며 이를 상품화시켰다.4 현 시점의 의학 관점에서 보면 황당하고 비과학적인 면이 있지만 당시 우리의 선배 의사들은 이를 믿었다.

심박동기의 발달-경피적 심장조율(external pacing)

   심박동기가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에 들어서이다. 그 이전에는 심장 안으로 전극을 집어넣고 자극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어렵고 위험성이 있어 다른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 결과 피부를 통한 자극 방법을 개발하게 되었는데, 엔지니어인 John Hopps와 흉부외과 의사 WG Bigelow 그룹과 PM Zoll이 여기에 공헌하였다.5 Hopps와 Bigelow는 캐나다의 토론토 병원에서 1950년 경피적 심장 자극용 심박동기를 개발하고 같은 해 외과학회에서 발표하여 심박동기에 ‘토론토 기계(Toronto machine)'란 별명을 얻게 되는 영예를 누렸다. 그러나 감전과 심실세동 유발의 위험성으로 크게 사용되지는 못하였다. Zoll은 직후인 1952년에 완전방실차단으로 심정지가 생기는 환자에서 경피적 심장 자극을 52시간 지속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Hopps는 캐나다의 국립연구소인 NRC에서 관련된 여러 연구를 했으며, 외부 자극외에도 개심 수술에서 사용하는 제세동기의 초기 모델을 개발하는 등 심박동기 개발에 있어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심박동기의 발달-심외막 조율(epicardial pacing)

   1950년대에는 심장 수술이 발전하며 심장 수술과 함께 심장 표면을 전기적으로 자극하는 심외막조율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이 당시 심박동기는 크기가 커서 이동이 어려웠고 더구나 자체 전원이 없어 벽에 붙어 있는 전원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 시점에 심박동기의 역사에 큰 흐름을 바꾸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1957년 10월 31일 흉부외과 의사 Walton Lillehei가 수술한 선천성 심장병 어린아이에게 불행한 일이 발생하였다. 이 아이는 수술 후 임시 박동기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도시에 정전 사태가 발생해 박동기가 작동하지 못하였고, 아이는 결국 사망하게 되었다.6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Lillehei는 엔지니어 Earl Bakken에게 부탁해 배터리로 작동하고 트랜지스터를 사용하는 임시 박동기를 개발하게 되었는데, 그 크기나 모양은 현재의 임시 박동기와 유사할 정도이다.

심박동기의 발달-수술을 통한 이식형 심박동기(implantable pacemaker)

   1958년 스웨덴 Karolinska 연구소에서 최초의 이식형 심박동기가 개발되었다. 엔지니어 Rune Elmqvist와 외과의사 Ake Senning은 개흉술을 통해 심외막에 완전 이식형 영구 심박동기를 시술하였다. 그러나 최초의 이식형 심박동기는 3시간밖에 지속되지 못하였다. 세계에서 최초로 영구 심박동기를 시술받은 사람은 Arne Larsson이라는 사업가인데, 평생 26개의 영구 심박동기를 시술받았으며, 2001년에 8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최초로 이 수술을 집도했던 Senning과 개발자인 Elmqvist는 Larsson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7

심박동기의 발달-경정맥 이식형 심박동기(transvenous implantable pacemaker)

   1959년에는 Seymour Furman과 John Schwedel이 정맥을 통한 임시 박동기를 선보였고,8 여기에 힘입어 1960년 우르과이의 Fiandra와 Rubio가 경정맥 이식형 심박동기를 삽입 수술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 이후 1962년에서 1963년에 걸쳐 미국의 Parsonnet, 스웨덴의 Lagergren, 프랑스의 Welti 등이 이 방법을 이용하여 영구 심박동기를 시술하였다고 한다.9 전극을 방사선 투시 하에 정맥을 통해 우심실첨에 위치시키는 현재의 방식이 정립된 것이 바로 이 시점이다. 또 기계적 발전도 크게 이루어졌는데, 엔지니어 Wilson Greatbatch가 심박동기에 수은 전지를 사용해 수명을 대폭 증가시키게 되었다.

그 이후 심박동기의 발달

   현재와 거의 같은 영구 심박동기가 개발되어 사용된 것은 1960년대 이후이며, 그 이후에도 기술적 발달은 지속되었다. 단실(single chamber)에서 양실(dual chamber)로, 조율 반응성(rate response)의 도입, MVP(managed ventricular pacing) 기능의 도입, MR(magnetic resonance) 저항성 심박동기 등이다. 거기에 더해 최근에는 유도가 필요 없는(leadless) 심박동기에 이르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영구 심박동기 역사

   우리나라는 당시 의학을 주도했던 유럽과 교류가 전무한 상태였고, 의학 서적은 1620년 허준의 동의보감 정도가 전해진다. 여기에 부정맥과 연관이 있는 맥의 기술이 있다. 즉, 맥이 빠르고 때때로 한번 멈추고 다시 뛴다는 促(촉맥), 맥이 느리고 때때로 한번 멈추고 다시 뛴다는 結(결맥), 맥이 멈추고는 한참 만에 다시 뛴다는 代(대맥) 정도의 기술이다. 불행히도 우리나라 첫 번째 영구 심박동기 삽입술은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김종설에 의하면 1960년 국립중앙의료원의 전신인 스칸디나비아 의료원에서 한 노르웨이 의사와 김종설이 무수축(asystole)을 보인 17세 여성 환자를 개흉하여 심외막에 초기의 영구 심박동기를 시술하였다고 한다. 이 환자의 경우 1년 반 이후 유도선 (lead)에 문제가 생겨 재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이름이 확인되지 않은 미군 군의관에 의해 경정맥 영구 심박동기 시술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 이후 공식적인 기록으로 확인이 가능한 것은 세브란스병원 서정삼, 성모병원 김삼수, 예수병원 Dr. Chu이다. 1975년 박육 등이 대한마취과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1968년부터 1975년에 걸쳐 17례의 심박동기 시술과 관련한 마취 사례를 보고하였다.10 17례에서 영구형과 임시형을 구분하지 않고 있어 파악이 어려우나 사례를 읽어보면 대부분은 임시형이고, 일부가 영구형으로 생각되며, 1969년에 처음 영구 심박동기를 시술했다고 한다(Figure 1).



1975년 중앙일보 보도에서 김삼수가 아담스 스톡스 증후군(Adams-Stokes syndrome)을 보인 16세 소녀에게 영구 심박동기를 시술한 이야기가 보도되었다(Figure 2).11 이후에 1975년부터 1981년까지 김삼수는 44례의 영구 심박동기 시술을 했다는 보도가 발표되었다. 그리고 1983년 예수병원의 Dr. 추가 5례의 영구 심박동기를 시술한 보고가 있다(Figure 3).12 저자가 심장의사 초년 시절인 1983년 심장학회장에서 영구 심박동기와 관련하여 김삼수와 이웅구 간에 날카로운 토론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는데, 이를 보면 당시에 우리나라에도 영구 심박동기가 서맥 치료로서 완전히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로 가톨릭의대 성바오로병원의 경우 1980년 14례, 1981년 8례, 1982년 13례, 1983년 20례, 1984년 29례, 1985년 20례의 영구 심박동기 시술이 시행된 기록이 있으며,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의 경우 1983년에 6례, 1984 년에 22례, 1985년에 33례의 영구 심박동기를 시행한 기록이 남아있다. 전남대의 경우 1983년 5례, 1984년 6례, 1985년 7례의 시술이 있었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우리나라에서 영구 심박동기가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의 영구 심박동기 현황-시술 수

   우리나라의 영구 심박동기 현황을 추적하고 있는 필자의 자료에 의하면 2000년 전체 삽입 숫자는 1,120건으로 매년 10% 이상 성장하고 있다. 2012년 연간 총 3,484례의 영구 심박동기가 우리나라에서 시술되었고, 2013년 최종 집계가 되지는 않았으나 4,000례를 돌파한 것으로 보인다. 총 시술 수의 20-25%는 교체에 해당한다. 2012년 3,484건 중 837건이 교체이다(Figure 4).
   2000년부터 2012년까지 영구 심박동기 시술 수를 국제적 비교 기준인 인구 100만 명당 시술 수로 나타낸다면, 2000년 19.3건에서 2012년 53.1건으로 증가세는 현저하다. 국제적인 비교를 발표하고 있는 World Registry는 5년에 한번 발표가 되고 있어 최근의 데이터는 2009년 데이터이다. 이 자료에 의하면 아시아 국가들의 영구 심박동기 시술 수가 서양의 여러 나라에 비해 절반도 되지 못할 정도로 적은데, 일본이 272건, 타이완이 172건, 홍콩이 124건, 싱가포르가 94건, 우리가 42건 정도이다.

우리나라의 영구 심박동기 현황-시술 기관 수

   저자가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한 2000년에 우리나라에서 영구 심박동기를 시술하는 기관의 수는 69개였는데, 2012년에는 127개로 늘었다. 2012년 한 기관당 평균 영구 심박동기 시술 수는 28.9건이었다. 2012년 한 해에 201례 이상 시술한 기관은 1개, 101-200례를 시술한 기관은 6개, 51-100례를 시술한 기관은 12 개, 11-50례를 시술한 기관은 61개, 2-10례를 시술한 기관 수는 38개, 단 1례를 시술한 기관은 9개였다.

우리나라의 영구 심박동기 현황-적응증

   가장 최근의 자료인 2012년 교체가 아닌 신환에서 영구 심박동기 적응증을 보면 56%가 방실차단으로 동기능장애를 압도한다. 전 세계적으로 국민 소득이 높은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방실차단보다 동기능장애로 심박동기를 시술하는 경우가 많다. 2009년 World Registry에 의하면 방실차단이 차지하는 비율이 우리나라 58%, 일본 46%, 싱가폴 39%, 타이완 36%, 벨기에 23%로 우리나라는 방실차단이 차지하는 비율이 월등하게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방실차단은 진단이 쉽고 영구 심박동기 결정이 단순하지만 동기능장애는 상대적으로 진단이 어렵기도 하며, 심박동기 시술이 생명보다는 증상 호전에 목적이 있어 삶의 질을 중시하는 나라에서 시술이 많은데, 그런 면에서 아직 우리 사회는 모자란 면이 있다.

우리나라의 영구 심박동기 현황-심박동기 모드

   역사적으로 심박동기의 기술적 발달은 우심실만 인식, 자극하는 심실 감지 자극형(ventricle pacing, ventricle sensing, inhibited by ventricle event, VVI) 에서 심방과 심실을 모두 인식, 자극하는 방실 동시 감지 자극형(dual chamber pacing, dual chamber sensing, dual function, DDD)으로 발달했고, 이어 R 모드가 도입되는 단계를 밟아 왔다. 그 결과 심박동기 시술이 많은 나라일수록 DDD(R)를 많이 사용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심박동기 모드는 선진국형이다. 2012년 DDDR이 40%를 차지하고 DDD가 27%로 거의 70%가 심방심실 순차형(AV synchrony)을 유지하는 박동기이다. 반면 VVI는 2000년 24%를 차지했으나 2012년에는 10% 수준으로 감소하였다. 2009년 World Registry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DDD와 DDDR이 전체의 60%를 차지하는데 비해 미국은 80%, 벨기에는 78%로 우리나라보다 높지만 타이완 62%, 일본 51%를 보면 아시아에서는 선진국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영구 심박동기 현황-성별

   일반적으로 심장을 침범하는 질환은 남성에 많다. 부정맥도 다르지 않고 영구 심박동기 시술 역시 남성에서 더 많이 이루어진다. 세계적으로 비슷한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다르다. 영구 심박동기를 시술받는 환자 중 여성이 50%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는 극히 드문데 60%를 여성이 차지하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 2009년 World Registry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61%가 여성인데 비해 일본 47%, 뉴질랜드 46%, 이탈리아 46% 정도이다.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의 영구 심박동기 현황-평균 연령

   2012년 우리나라에서 영구 심박동기 시술을 받은 환자의 평균 연령은 68.8세(남성 67.8세, 여성 69.5세)로서 2008년의 65.7세에 비해 증가하고 있다. 이런 증가 현상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생각된다. 2008년에서 2012년에 걸친 최근 5년간의 변화를 보면 2008년 81-90세 구간이 전체의 10%를 차지하던 것이 5년 후 2012년에는 15%를 차지할 만큼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영구 심박동기 시술의 평균 연령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낮은 편이다. 한 예로 2009년 World Registry에 의하면 80세 이상의 비율이 우리나라는 16%에 비해 덴마크는 40%, 홍콩은 36%, 싱가포르는 26%로 매우 높다.

결론

   우리나라의 영구 심박동기 시술을 요약한다면 몇 가지 특징을 들 수 있다. 우선 시술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는 있으나 서양은 물론 다른 아시아 국가와 비교하면 시술률은 매우 낮은 편이다. 또 상대적으로 젊은 연령층에서 시술이 이뤄지고 있으며, 특징적으로 여성의 시술이 남성보다 높다. 영구 심박동기를 시술하는 의료 기관의 수는 좁은 국토를 감안할 때 충분하다고 판단할 수 있고, 전체적인 시술 수가 적기도 하지만 한 기관당 시술 수도 적은 편이다. 심박동기의 적응증 중에 선진국형인 동기능장애로 인한 시술이 상대적으로 적은 점, 그러나 심방, 심실을 조율하는 DDD/DDDR의 사용은 높은 점 등이 특징적이다. 우리나라의 영구 심박동기 시술이 적은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몇 가지 설명을 빼놓을 수 없다. 즉, 까다로운 보험 심사의 문제점, 시술에 대해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의사의 태도, 고령층 유교 문화의 특성, 서맥의 증상을 노화로만 인식하는 질병 인식의 문제점, 상대적으로 적은 노령 인구층, 확실하지는 않으나 낮은 전도 장애의 유병률을 들 수 있다.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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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McWilliam JA. Electrical stimulation of the heart in man. Br Med J. 1899;1:348-350.
  3. Lidwell MC. Cardiac Disease in Relation to Anaesthesia. In Transactions of the Third Session, Australasian Medical Congress, Sydney, Australia, Sept. 2-7, 1929, p160.
  4. Furman S, Szarka G, Layvand D. Reconstruction of Hyman's second pacemaker. Pacing Clin Electrophysiol. 2005;28:446-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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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Weirich W, Gott V, Lillehei C. The treatment of complete heart block by the combined use of a myocardial electrode and an artificial pacemaker. Surg Forum. 1957;8:360-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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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박욱, 오홍근. 심장박동기와 마취. 대한마취과학회지. 1975;8:171.
  11. 심장박동기 이식수술받아. 중앙일보. 1975년 1월 17일.
  12. 윤석희, 신대균, 김민철 외. Sick-Sinus 증후군에 대한 인공 심박동기의 임상적 경험. 순환기. 1983;2:435-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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